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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주머니

by 기억공작소 2021.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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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나 귀하게 자랐을 것 같은 막내 사내아이로 태어났다.

누나 셋 사이의 나라고 딱히 다를 건 없었지만 항상 드러내진 않으시지만 부족하지 않게 그렇지만 느낄 수 있게끔 사랑을 주는 완벽한 발렌스를 소유하신 부모님과 어릴 때는 썩히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시소의 중간쯤을 오르내리는 누나들이 있었다. 엄마에게 매도 많이 맞은 듯 하지만 사랑도 그만큼 받은 어린 시절 기억이었다

나이가 들어 엄마의 테두리에서 한참 벗어났다고 생각될 언젠가 즈음 엄마 집에 갔다가 저녁에 왠지 적적함에 술을 빌어 스스로의 적막에서 벗어나고 싶어 마트로 다리를 옮겼다.
"너 어디 가니?"
마치 저 산 밑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보물창고를 근처에 숨긴듯한 궁금이 가득한 얼굴로 묻는다.
"어 마트. 심심해서 술이나 사러 가려고." 벌써 꾀나 늦은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같이 가자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은 신다.

술과 담배를 사러 갈 목적이었는데 엄마가 같이 가신다니 얼굴이 화끈해져 곤란한 상황이다.
"그냥 집에 계셔" 한사코 만류했지만 굳이 따라가시겠단다.
밤의 왠지 모를 어색한 기류에 같이 길을 걷는 분위기가 더욱 어두워진다.
마치 타인이 안부를 묻듯 무심히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담배 한 갑과 소주 2병을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엄마는 마치 마트 주인처럼 계산대에서 벗어나질 않으신다.
계산을 하러 계산대에 물건을 무심하게 그렇지만 조심하게 내려놓았다. 엄마가 보는 아들의 담배와 술은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이 들자 빨간 물감이 심장을 타고 돌듯 금세 얼굴이 또 붉어지머 귀까지 뜨겁다.

계산기에서 날카로운 전자음이 들리고 카드를 내미는 순간, 엄마는 내 손을 물리며 당신의 바지에 작게 붙어있는 내 손은 들어가기도 힘든 주머니에 손을 욱여넣고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는 지폐 몇 장을 다 꺼낸다. 그리곤 이걸로 계산하라며 마트 주인을 재촉한다.

"엄마 그냥 내가 살게."라고 해봤자 팔을 휘저으신다.
회사에서 과장이란 직급을 달고 있으면서 마치 꼬마의 과자값 내주는 것 같아 왠지 부끄러워졌다. 마치 어릴 때 주전부리를 사주던 엄마가 그윽이 생각났다.
그때는 과자 살 돈도 없었지만 설령 지금에서야 있다고 한들 엄마는 내 돈을 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신다. 그 작은 돈이라도 자식의 돈은 아까우신가 보다.
엄마의 그 조그만 주머니에서 아무렇게나 구겨진 돈은 어머니의 계속해서 자식에게 주고픈 큰 사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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